목차
1. 왜 인터내셔널 스쿨이었나
2. 학교를 고르는 과정 — UIA vs TIS
3. 입학 전에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것들
4. 10개월, 아이가 달라졌다
5. 비용과 운영 현실
6. 마치며 — 환경이 아이를 만든다
1. 왜 인터내셔널 스쿨이었나
첫째가 만 4살이 됐을 때, 나는 선택지 앞에서 한참 망설였다. 일본 거주 기간이 짧았고, 6개월 다닌 일본 어린이집에서 아이는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했다. 말이 안 통하는 환경에서 아이는 한두 명의 남자아이와 기차 장난감만 붙잡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애정을 붙이지 못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때 내린 판단은 단순했다. 다 같이 영어를 못하는 환경, 그나마 익숙한 언어로 시작하는 곳이 낫겠다. 일본어 어린이집에서의 실패가 오히려 방향을 잡아줬다.
참고로 일본은 입학이 4월 기준이다. 학년도 4월생부터 나뉘는데, 첫째는 4월 5일생이라 단 5일 차이로 한 학년 늦게 들어가게 됐다. 남편이 일찍 입학시키려고 학교 측과 여러 번 얘기했지만, 결국 다음 해 입학으로 결정이 났다.
2. 학교를 고르는 과정 — UIA vs TIS
도쿄에서 후보는 크게 두 군데였다. 탑티어인 브리티시, 아메리칸 계열은 거리도 멀고 학비가 부담스럽다는 얘기에 먼저 제외했다. 남은 건 UIA와 TIS.
UIA는 인도인이 설립한 학교로, 한 건물에 어린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 함께 있었다. 건물이 큰 것도 아닌데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반이 좁아 보였다. 결정적인 건 오리엔테이션 날이었다.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첫째는 아빠 뒤에 숨어 계속 울기만 했다. 영어 환경으로는 1순위였지만, 아이가 싫다는데 어쩔 수 없었다. 90%가 인도 아이들인 환경에서 더 주눅 들까 봐 걱정도 됐다.
다음날 찾아간 TIS는 달랐다. 건물 1층만 사용했지만 공간이 더 넓었고, 킨더 1~3학년까지만 있었다. 한 반에 열 명, 한 학년에 스무 명 정도. 같은 동양인 친구들이라 그런지 첫째는 여기를 다니고 싶어 했다. 조금 울긴 했지만 전날과는 달랐다. 그걸로 결정했다.
3. 입학 전에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것들
남편이 입학 전 부모 상담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냥 상담이려니 하고 캐주얼하게 입고 갔다. 찢어진 청바지에 면티, 슬리퍼. 그런데 상담실에 들어서니 다른 일본 부모들은 죄다 검은 정장이었다. 처음 보는 문화차이에 적잖게 충격이었다.
아이의 장단점, 기저귀는 뗐는지, 성격은 어떤지. 건강 상태와 좋아하는 것까지 물었다. 남편이 먼저 선생님께 내가 일본어를 못하니 영어로 얘기해 달라고 했고, 나는 이런 친절한 남편 덕분에 아무 준비 없이 선생님과 영어 면접을 봤다. 가끔 남편이 일본어로 끼어들면 선생님이 일본어로 답하다가 다시 영어로 전환하기를 반복했다. 선생님 표정에서 정신없다는 게 느껴졌다. 나도 예열 없이 오랜만에 영어 쓰느라 정신없었는데 괜한 미안함이 들었다.
오리엔테이션은 1월이었는데, 마침내 둘째 출산 시기와 겹쳐 한국에 있어야 했다. 남편이 혼자 참석했고, 준비물과 학교 운영방침 설명, 돌아가며 자기 아이 소개 시간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 학교 문화를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준비했을 텐데, 처음 겪는 것들이 많았다.
학비는 아래 영수증 이미지를 참고하면 되고 1년 일시납이나 분기별 납부 중 선택할 수 있다. 일본은 3학기제로 운영되고, 입학금과 운영비는 별도다. 수업은 9시부터 2시까지, 이후는 데이케어로 아이들이 자유롭게 지내는 시간이다. 2시에 하원하면 담임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직접 전해준다. 나는 데이케어 후 4시에 데리러 가는데, 그 시간엔 하원 타이밍이 다 달라서 조용히 아이만 나온다.
4. 10개월, 아이가 달라졌다
입학 전, 우리는 아이에게 ABC 송을 매일 저녁에 보여줬다. 아이가 따라 부를 정도가 될 때까지. 그러다가 학교 다니면서 학교 내용을 복습하지 않고 계속 ABC노래만 부르자 학교에서 매월 반복해서 배우는 노래위주로 들려줬다. 매월 뉴스레터에 배울 노래제목을 보내주는데 집에서 틀어주면 학교에서 배운 율동을 따라 하고 따라 부른다. 그러고 나서 CVC 단어 발음을 중심으로 하는 알파블럭스로 넘어갔다. 유치원 첫날, 선생님이 아이가 아는 노래와 알파벳이 나오자 신나게 따라 했다고 전해줬다. 아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아이는 다르다.
해외에서 영어 유치원을 고려하는 부모라면, 입학 전 ABC 송을 외울 정도로 반복 노출시킨 뒤 영어 동요, 나는 SUPER SIMPLE SONG을 계속 틀어줬고 학교 다닌 후 단어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할 때 알파블럭스로 넘어가는 흐름을 추천한다. 아웃풋이 바로 안 나온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아이는 두 달이 지나서야 혼자 놀면서 "크, 아, 트, 캣" 하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빠르면 두 달, 늦으면 네다섯 달이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변화는 이렇다. 라이팅에서는 알파벳 대소문자를 크기에 맞게 쓰고, 자기 이름과 날짜를 틀리지 않고 쓴다. 가끔 S를 뒤집어쓰는 건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스피킹은 집에서 영어로 오늘 뭐 배웠는지 물어보면 서너 단어를 연결해 대답한다. 옷 입기, 양치, 식탁 정리 같은 일상 지시도 영어로 하면 잘 따라온다.
가장 놀랐던 순간이 두 번 있다. 어느 날 아이가 갑자기 "Mommy is my number one treasure"라고 했다. 내가 늘 "넌 나의 보물 1호야"라고 했던 말을 영어로 돌려준 거였다. 또 한 번은 남편이 식탁에서 코 파는 아이에게 "코딱지가 영어로 뭔지 알아?" 하고 물었더니 "bogey"라고 바로 튀어나왔다. 남편은 그날 모든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ABC 송밖에 모르던 아이가 여기까지 왔다.
단, 한 가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영어 실력은 분명히 늘었는데, 발음이 조금씩 일본식으로 굳어가고 있다. TH나 CK 같은 까다로운 발음은 오히려 나보다 정확하게 하는데, stop을 "스토프", cup을 "커프"라고 받침을 또박또박 나눠 읽는다. 아마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다. 그때마다 옆에서 발음을 고쳐주고 있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자연히 교정될지, 아니면 한동안 더 붙잡고 가야 할지는 두고 봐야 알 것 같다. 환경이 아이를 만든다는 말이 발음 앞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5. 비용과 운영 현실
학비 외에 챙겨야 할 항목들이 있다. 데이케어는 1년 일시납, 학기별, 혹은 하루 단위로도 신청 가능하다. 단, 방식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다. 여름방학이 길어 서머스쿨을 따로 신청할 수 있는데, 매일 주제가 바뀌고 만들기 결과물을 들고 온다. 일주일 단위 신청이 가능하지만 취소 시 수수료가 발생한다.
소풍은 학기마다 다르다. 1학기엔 부모 포함 레크리에이션, 2학기엔 아이들끼리 고구마 수확 체험을 다녀왔다. 3학기는 날씨 때문인지 소풍이 없었다.
데이케어 시간엔 종이접기, 장난감, 일본인 스태프가 책을 읽어주거나 피아노를 쳐주는 활동을 한다. 이 시간엔 영어 규칙이 없어서 아이들끼리 자연스럽게 일본어로 대화한다. 어느 날 하원길에 친구에게 "내일 또 놀아, 내일은 화장실 빨리 가"를 일본어로 자연스럽게 말하는 걸 들었다. 따로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6. 마치며 — 환경이 아이를 만든다
"아이들은 배우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배운다." 장 피아제의 말이다. 10개월을 지켜보면서 이 문장이 자꾸 떠올랐다. 언어도, 적응도, 발음까지도 결국 아이가 살아가는 환경 안에서 스며드는 것이었다. 어른보다 훨씬 빠르게.
사실 한국에 있을 때 나와 남편은 영어 유치원을 보낼 생각이 없었다. 내 아이는 천재가 아니다. 차와 기차를 좋아하고, 노는 게 제일 좋은, 하나를 가르치면 다음날 바로 잊어버리는 평범한 남자아이라는 걸 내가 제일 잘 안다. 처음부터 교육에 열을 올리고 싶지 않았고, 다니던 어린이집에 만족했고, 영어보다 한국어라도 먼저 잘했으면 했다.
뜻하지 않게 시작된 해외살이가 아이를 인터내셔널 킨더로 데려왔다. 계획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만족한다.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과 부대끼며 쌓은 경험이, 언젠가 아이의 삶 어딘가에서 조용히 힘을 발휘하는 영양분으로 남아있길 바란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아이는 살아가면서 배우고 있으니까.



